CEO 커넥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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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도 상미당에서 출발해 SPC그룹으로, 허창성 허영인 허진수 허희수 가족과 혼맥
- SPC그룹 오너일가는 황해도 옹진 상미당을 시작으로 국내 최대 베이커리 프렌차이즈 파리바게뜨를 보유한 SPC그룹을 일궈냈다. <그래픽 씨저널> 국내 최대 베이커리 프렌차이즈 파리바게뜨를 보유한 SPC그룹의 모태는 황해도 옹진의 '상미당'에서 출발한다. 허창성 SPC그룹 창업회장은 1921년 2월 황해도 옹진군에서 태어났다. 허창성 창업회장은 어렸을 적 집안 형편이 어려워 보통학교만 졸업한 뒤 제과점에 취직해 제빵기술을 익혀 25세에 상미당을 열었다. 당시 옹진에는 미군이 주둔해 있어 설탕과 버터 등의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 빵을 만들기에 적합한 환경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허창성 창업회장은 더 큰 도전을 위해 1948년 연고가 없는 서울 을지로 4가로 삼미당을 옮기게 된다. 허창성 창업회장은 이듬해 기존보다 연료비를 10분의 1로 낮춘 무연탄 가마를 독창적으로 개발해 이익을 극대화했다. 1959년에는 서울 용산에 삼립제과공사(현재 삼립식품)를 세워 연구개발을 통해 1964년 양산빵 '삼립크림빵'을 내놓았고 큰 인기를 끌었다. 허창성 창업회장은 김순일씨와 결혼해 허영선, 허영희, 허영인, 허영덕, 허영석, 허영한, 허영우 등 6남1녀를 뒀다. 허창성 창업회장은 1983년 장남 허영선을 후계자로 선택했고,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유학중이던 허영선 전 삼립식품 회장은 귀국해 삼립식품의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았다. 이 무렵 차남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삼립식품의 사장이었으나, 후계구도에서 밀려 삼립식품 매출의 10분의 1에 불과한 작은 회사였던 샤니의 대표이사가 됐다. 허영선 전 삼립식품 회장은 그 뒤 업종 다각화를 위해 음료와 유선방송 사업, 리조트 개발사업 등에 진출했으나 1990년대 중반 IMF 외환위기가 발생면서 사업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부도가 났다. 반면 허영인 회장은 파리바게뜨, 베스킨라빈스 등을 급성장시키며 매출 5천억 원 대의 태인샤니그룹을 이끌고 있었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2002년 삼립식품을 인수했다. 허영인 회장은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회장의 막내딸이자 이동찬 전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여동생인 이미향씨와 결혼했다. 허영인 회장은 이미향씨와 사이에 허진수, 허희수 두 아들을 뒀다. 장남 허진수 SPC그룹 부회장은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여섯째 아들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의 장녀 박효원씨와 결혼해 아들 둘을 뒀다. 허영인 회장의 차남 허희수 SPC그룹 사장은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손녀 안리나씨와 혼인했다. 안리나씨의 부모는 안용찬 애경그룹 생활항공부문 부회장과 채은정 애경산업 부사장이다. 조장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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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호아시아나그룹 쇠락했지만, 창업주 박인천 한국재계 핵심가문과 촘촘한 혼맥 만들어
- 1989년 9월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의 배우자 이순정씨(가운데줄 왼쪽 5번째)의 팔순잔치를 기념해 가족들이 사진을 찍었다. (맨 뒷줄 왼쪽부터)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강대균 대한전자재료 회장, 배영환 삼화고속 명예회장,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 박정구 금호아시아나 전 회장, 박은형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박종구 초당대 총장. (가운데줄 왼쪽부터) 박삼구 회장 배우자 이경렬씨, 박강자 금호미술관 관장, 박경애씨, 마거릿 클라크, 이순정씨, 김형일씨, 위진영씨, 박현주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부회장, 이계옥씨, (앞줄 왼쪽 4번째)임세령 대상 식품사업총괄부분 상무.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의 직계·방계로 이어진 광범위한 혼맥은 금호가가 국내 주요 기업·정치·관료 가문들과 폭 넓게 연결되는 토대가 됐다. 박인천 창업주는 1946년 광주택시를 창업한 뒤 금호고속으로 사업을 성장시켰다. 그룹 2세가 경영에 들어서면서 금호건설과 금호석유화학, 금호타이어 등 주요 계열사를 추가하며 사업을 넓혔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이었던 1988 제2민영 항공사 사업자로 선정돼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하면서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박인천 창업주는 4남2녀 가운데 셋째인데 아버지 박옥용과 재당숙 박순용이 장질부사로 세상을 떠나자 고 박순용의 양자로 입적해 가계를 이었다. 그 뒤 이순정씨와 혼인해 5남3녀를 두며 금호가의 기반을 다졌다. 박인천 창업주의 장남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은 미국 유학 후 학계와 관료를 거쳐 1972년부터 경영에 참여했다. 전경련 부회장을 지내다 1988년 아시아나항공 창립을 총괄했다. 박성용 명예회장은 앨버트 나이트 미국 벌링톤저축은행 부총재의 딸 마거릿 클라크와 결혼해 1남1녀를 뒀다. 그의 아들 박재영씨는 미국 영화업계에서 활동하며 구자훈 LIG손해보험 회장의 셋째 딸 구문정씨와 혼인했다. 구문정씨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 구철회씨의 외손녀다. 박인천 창업주의 둘째 아들 박정구 금호아시아나 전 회장은 1972년 광주여객 사장으로 경영에 참여하다 1996년 형으로부터 금호아시아나그룹 총수직을 넘겨받았다. 경북 안동 출신 5선 의원 김익기 전 국회의원의 딸 김형일씨와 혼인해 1남3녀를 뒀다. 김익기 의원의 또 다른 딸은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박정구 전 회장의 자녀도 혼맥으로 재계에서 발을 넓혔다. 장남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는 GS그룹 가문의 허경수 코스모앤컴퍼니 회장 딸 허지연씨와 결혼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과는 사촌 관계로 이어진다. 장녀 박은형씨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차남 김선협 포천아도니스CC 대표와, 차녀 박은경씨는 장상태 전 동국제강 회장의 손자 장세홍 한국철강 대표와, 삼녀 박은혜씨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아들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와 결혼했다. 박인천 창업주의 셋째 아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재무부 장관·산업은행 총재를 지낸 이정환 전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딸 이경렬씨와 결혼했다. 1남1녀를 뒀다. 박상구 회장의 장남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회장은 중학교 동창 김현정씨와 혼인해 두 아들을 뒀다. 장녀 박세진씨는 최성욱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와 결혼했다. 박인천 창업주의 넷째 아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은 위창남 전 경남투자금융 사장의 딸 위진영씨와 결혼했다. 1남1녀를 뒀고, 장남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총괄사장이 2007년부터 그룹 경영을 잇고 있다. 박인천 창업주의 막내아들 박종구 초당대 총장은 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기업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명선 삼흥복장 전 사장의 장녀 이계옥씨와 결혼해 1남1녀를 뒀다. 박인천 창업주의 딸들도 주요 기업가문과 혼맥을 맺으며 금호가의 재계 인연을 확장했다. 첫째 딸 박경애씨는 배영환 삼화고속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배 회장은 제헌의원 출신인 배태성의 장남이다. 이들의 자녀 가운데 4남인 배홍철 회장이 삼화고속을 맡고 있다. 둘째 딸 박강자 금호미술관 관장은 강대균 대한전자재료 회장과 혼인했다. 강 회장은 서울대·미국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계·재계 인물이다. 막내 딸 박현주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부회장은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과 결혼해 호남·호남 재계 대표 가문의 결합으로 주목받았다. 박 부회장은 대상홀딩스 부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박현주 부회장의 장녀 임세령 대상 식품사업총괄부문 상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결혼했으나 2009년 이혼했다. 1남1녀를 뒀다. 현재는 배우 이정재와 교제하고 있다. 차녀 임상민 대상그룹 부사장은 2009년 대상그룹 전략기획팀 차장으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아오다 2023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현재 대상홀딩스의 최대주주다. 임상민 부사장은 2015년 국유진 아스트라홀딩스 대표와 결혼해 1남1녀를 뒀다. 국 대표는 국균 한영회계법인 전 대표이사이자 경영자문위원의 아들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스톤의 뉴욕본사에 있다가 한국 프라이빗에퀴디(PE)사업을 이끌었다. 2022년 아버지 국균 전 대표와 함께 부동산관리법인 아스트라홀딩스를 세웠다. 박인천 창업주의 형제들도 주요 재계 인사들과 혼맥을 형성하며 영향력을 넓혀왔다. 동생 박동복 금호전기 전 회장은 광주 경찰서장으로 있다가 광주여객(현 금호고속) 전무를 맡으며 조카 박상구 삼양타이어 전 회장과 함께 금호아시아나그룹 창립을 도왔다. 1979년 금호전기와 모빌코리아를 갖고 독립했다. 정경애씨와 혼인해 5명의 아들을 낳았다. 박동복 전 회장은 강세원 희성금속 전 대표와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강세원 대표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차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인이다. 박인천 창업주의 형 박성천씨는 김현금씨와 결혼해 삼남을 뒀다. 그의 둘째이자 금호아시아나그룹 창립을 도왔던 박상구 삼양타이어 전 회장은 1981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결별했다. 그 뒤 그의 아들 박연호 부산저축은행 전 회장과 함께 저축은행을 키웠다. 안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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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화약공판 인수해 굴지의 한화그룹으로 성장, 김종희 김승연 김동관 3대의 가족과 혼맥
- 현암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아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최고글로벌책임자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회장은 1922년 11월12일 아버지 김재민씨와 어머니 오명철씨 슬하 4남1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김종희 창업회장은 당숙 김봉서씨의 추천과 고이케 쓰루이치 경시의 소개로 1942년 서울 남대문에 있었던 조선화약공판주식회사에 입사했다. 조선화약공판주식회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세운 회사로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화약을 공급하던 곳이었다. 김종희 창업회장은 구매부서 경리로 배치됐으나 당시 인천공장 공장장을 지낸 마쓰무로 노부오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면서 화약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4년 1월에는 마쓰무로의 추천으로 생산부 다이너마이트계의 계장으로 승진했다. 광복 당시 마쓰무로는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평소 신뢰했던 김종희 창업회장에게 회사를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고 전해진다. 마쓰무로는 '조선이 앞으로 자주적으로 독립을 하려면 산업을 일으켜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화약산업이 반드시 필요하므로 일본인들이 모두 회사에서 손을 떼더라도 남아서 지켜주게'라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김종희 창업회장은 광복 뒤에도 자리를 지켰고 지배인이 됐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김종희 창업회장은 가족과 직원 5명을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길을 떠났다. 김종희 창업회장은 피난지 부산에서 친분이 생긴 미8군 스미스 소령을 만나 미8군과 '군수용 화약관리 용역계약'을 맺게 된다. 6·25 전쟁이 끝날 무렵 정부는 조선화약공판을 민간에 판다는 공고를 냈고, 김종희 회장은 이 회사를 인수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1952년 인수한 회사가 오늘날 한화그룹의 모태가 된 한국화약이다. 당시 강성태 상공부 장관은 김종희 창업회장에게 복구비용 전액을 지원해줄테니 인천에 있는 화약공장 복구사업을 맡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전해진다. 김종희 창업회장은 복구를 위한 설계도를 얻기 위해 인천 화약공장을 설계한 회사인 '일본유지'를 방문했다. 당시 일본유지에는 광복 이전에 함께 근무했던 마쓰무로가 상무로 일하고 있었다. 김종희 창업회장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를 입수해 복구작업을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김종희 창업회장은 숱한 어려움 끝에 1957년 10월에는 다이너마이트 생산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종희 창업회장은 부인 강태영씨와 결혼해 슬하에 김영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호연 빙그레 회장 등 2남1녀를 두었다. 3남매 가운데 장녀 김영혜씨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차남 이동훈 전 제일화제 회장과 결혼했다. 이동훈 전 회장과 김영혜씨의 장남 이제환씨는 손경식 CJ그룹 회장 겸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의 큰 딸 손희영씨와 결혼했다. 이후락 전 부장의 다섯째 아들 이동욱씨의 부인은 최종건 SK 창업회장의 막내딸 최에정씨다. 그리고 이후락 전 부장의 장남 이동진씨는 서정귀 전 호남정유 회장의 딸 서옥로씨와 혼인했다. 서정귀 전 회장은 김종희 창업회장의 장남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인 서정화 전 내무부장관과 6촌 관계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서정화 전 내무부장관의 딸 서영민씨와 결혼해 슬하에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최고글로벌책임자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등 세 아들을 두었다. 김종희 창업회장의 차남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김구 선생의 손녀이자 김신 전 교통부 장관의 막내딸인 김미씨와 혼인해 슬하에 김동환, 김정화, 김동만 등 2남1녀를 뒀다. 김미씨의 큰어머니는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안미생씨다. 조장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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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레퍼시픽 동백기름에서 K뷰티 선봉으로, 서성환 서경배 서민정 서호정 가족과 혼맥
- 뒷줄 왼쪽부터 창업주의 셋째 사위 최상용 고려대학교 의대 교수, 셋째 서은숙씨, 둘째 사위 김의광 전 장원산업 회장, 맏며느리 방혜성씨, 넷째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 막내 서경배 회장, 작은 며느리 신윤경씨, 외손자 최환석씨, 첫째 서송숙씨, 외손자 김우종씨, 외손자 최범식씨, 외손자 김근종씨. 앞줄 왼쪽부터 외손자 최연식씨, 손자 서상범씨. 고 서성환 창업회장. 품에 안긴 손녀는 서수연씨, 서성환 창업회장의 배우자 변금주씨, 외손녀 최양희씨, 둘째 서혜숙씨, 품에 안긴 손녀는 서민정씨, 다섯째 서미숙씨. <그래픽 씨저널> 서성환 아모레퍼시픽그룹 창업회장은 1923년 7월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에서 아버지 서대근씨와 어머니 윤독정씨의 3남3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서성환 창업회장의 집은 어머니 윤독정씨가 중심이 돼 가내수공업 형태로 화장품을 만들어 파는 등 잡화도매를 하는 창성상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윤독정씨는 여성들이 머릿결에 관심이 많은 것을 눈여겨보고 1932년부터 상류층이 쓰는 머릿기름인 동백기름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벌었다. 서성환 창업회장은 개성 중경소학교를 졸업한 뒤 16세부터 어머니로부터 화장품을 만드는 일을 배우며 집안일을 도왔다. 이 무렵 창성상회는 소규모 잡화점을 넘어 당시 개성의 백화점에 화장품 코너를 열 정도로 성장하기도 했다. 서성환 창업회장은 광복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45년 9월 서울 중구 남창동에 태평양상회를 설립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아모레퍼시픽 그룹의 시초가 됐다. 태평양처럼 넓은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태평양상회로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서성환 창업회장은 1947년 변금주씨와 결혼해 슬하에 2남4녀를 뒀다. 장녀 서송숙씨는 박세정 전 대선제분 회장의 아들 박내희 서강대학교 교수와 결혼했으나 그 뒤 이혼하게 됐다. 차녀 서혜숙씨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자유당 시절 상공부·교통부·내부부 수장을 지낸 김일환 전 장관의 셋째 아들 김의광 전 장원산업 회장과 결혼했다. 셋째딸 서은숙씨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장을 지낸 최상용 고려대학교 의대 교수와 혼인했다. 최상용 교수는 최두고 전 국회 건설위원장의 둘째 아들이다. 넷째딸 서미숙 전 리베라호텔 고문은 최주호 전 우성그룹 회장의 아들 최승진 전 우성그룹 부회장과 혼인했으나, 그 뒤 이혼했다. 서성환 창업회장의 장남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은 방우영 전 조선일보 상임고문의 1남3녀 가운데 장녀인 방혜성씨와 결혼했다.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서성환 창업회장의 차남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1990년 신춘호 농심 창업회장의 막내딸 신윤경씨와 혼인했다. 서성환 창업회장과 신춘호 창업회장은 같은 지역에 살면서 가까워져 사돈관계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경배 회장은 신윤경씨와 사이에 두 딸 서민정씨와 서호정씨를 뒀다. 서민정씨는 2020년 10월 신라호텔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배우자 홍라희씨의 동생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의 아들인 홍정환 보광창업투자 투자심사총괄과 결혼했다. 하지만 2021년 5월 결혼 8개월 만에 합의이혼했다. 조장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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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서 모자 공장으로 출발한 코오롱그룹, 이원만 이동찬 이웅열 이규호 4대의 가족과 혼맥
- 코오롱그룹 오너일가 4대의 모습. 앞줄 왼쪽부터 이원만 코오롱 창업회장, 이 창업회장의 부인 이위문씨. 뒷줄 왼쪽부터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 부인 서창희씨, 이웅열 명예회장, 이동찬 명예회장, 이규호 부회장, 이동찬 명예회장 부인 신덕진씨. <그래픽 씨저널>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회장은 1904년 9월7일 경상북도 영일군 신광면에서 아버지 이석정씨와 어머니 이사봉씨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원만 창업회장의 형 4명은 불행히도 어릴 때 모두 병으로 죽었다. 아버지 이석정씨도 이원만 창업회장이 16세 되던 1919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이석정씨가 별세한 뒤 이원만 창업회장에게 영향을 크게 미친 사람은 6촌형 이원기 전 대구 도평의원(도지사가 임명하는 의원)이었다. 이원만 창업회장은 이원기 전 도평의원의 도움으로 19세 때 경북산림조합 기수보(산림자원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취직했다. 그러던 중 일본에 다녀온 친구 정만수씨를 만나 자극을 받아 1933년 29세 때 일본으로 향했다. 이원만 창업회장은 일본 오사카에서 신문배달 등을 하다가 1935년 5월 아사히공예주식회사를 세우고 동생 이원천씨를 오사카로 불러 공동사업을 펼쳤다. 특히 이 당시 모자에 회사이름을 새겨 넣는 이른바 '광고 모자'를 만들어 크게 성공했다. 직원 1천 명을 두고 하루에 4만 여개의 모자를 만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37년에는 아들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까지 오사카로 부르고 회사 이름을 '아사히피복회사'로 바꿨다. 회사 경영은 불과 4년 만에 성공 궤도에 오르게 됐다. 이원만 창업회장은 1951년 아사히방적공업주식회사와 함께 도쿄에 삼경물산을 세워 1953년 한국에 나일론을 독점 공급하기 시작했다. 국내에 나일론이 들어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전해진다. 이원만 창업회장은 1954년 귀국해 나일론 유통업체 개명상사를 세우면서 코오롱그룹의 기반을 마련했다. 같은 해 일본 삼경물산의 한국법인 한국삼경물산을 세우면서 아들 이동찬 명예회장에게 대표를 맡겼다. 1957년에는 코오롱의 전신인 한국나이롱을 대구에 세워 국내 최초의 나일론 공장을 건립했다. 1963년 한국나이롱은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나일론을 수출했다. 이원만 창업회장은 그 뒤 여러 회사를 세우고 인수해 섬유사업과 건설업, 관광운송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1977년에는 아들 이동찬 명예회장에게 회장 자리를 넘겨주었다. 1981년 기존에 보유했던 한국나이롱과 한국폴리에스텔을 통합해 비로소 코오롱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원만 창업회장은 1920년 이위문씨와 결혼해 슬하에 이동찬, 이봉필, 이애란, 이미자, 이동보, 이미향씨 등 2남4녀를 뒀다. 이동찬 명예회장의 형제자매 중 이동보 전 코로옹TNS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우자 육영수 여사의 주선으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딸 김예리씨와 혼인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 부부는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 이동찬 명예회장의 막내동생 이미향씨는 허창성 삼립식품 창업회장의 둘째아들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미향씨의 아들 허진수 파리크라상 사장은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의 딸 박효원씨와 혼인했다.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은 박용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동생이다. 이동찬 명예회장은 맞선을 통해 신병옥씨의 무남독녀 신덕진씨와 혼인해 슬하에 이경숙, 이상희, 이혜숙, 이은주, 이웅열, 이경주씨 등 1남5녀를 뒀다. 이동찬 명예회장의 장녀 이경숙씨는 1969년 이효상 전 국회의장의 셋째 아들 이문조 영남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와 혼레를 올렸다. 차녀 이상희씨는 고홍명 한국빠이롯드만년필 회장의 장남 고석진 전 빠이롯드전자 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셋째 딸 이혜숙씨는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회장의 장남 이동혁 전 고려해운 회장과 혼인했다. 이동혁 전 고려해운 회장의 여동생은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의 부인 이운경씨다. 이동찬 명예회장의 아들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서병식 동남갈포공업 회장의 딸 서창희씨와 혼인해 슬하에 이규호 코오롱그룹 부회장과 이소윤씨, 이소민씨를 두었다. 이웅열 명예회장은 큰누나인 이경숙씨의 소개로 서창희씨를 만나게 됐다고 한다. 이경숙씨와 서창희씨는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선후배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규호 코오롱그룹 부회장은 유명 디자이너 우영미씨의 둘째 딸 정유진씨와 2022년 7월6일 서울 강남구 소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혼인했다. 조장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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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제강 가마니 장사에서 국내 3대 철강회사로, 장경호 장경태 장세주 장세욱 가족과 혼맥
-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과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 모습. <그래픽 씨저널> 장경호 동국제강 창업회장은 1899년 9월 부산 동래군에서 부농이었던 아버지 장윤식씨와 어머니 문염이씨의 4남2녀 가운데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장경호 창업회장은 14세가 되던 1912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현 보성고등학교)로 유학을 갔다. 당시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유학을 떠났던 사람 가운데는 4·19 직후 과도정부의 내각수반을 지낸 허정 전 총리가 있었다. 두 사람은 호형호제하며 우정을 나눴다고 하며, 허정 전 총리가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어려운 시절을 보낼 때 장경호 창업회장은 말없이 그를 도왔다고 전해진다. 장경호 창업회장은 일본 유학도 떠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귀국한 뒤 농사를 크게 짓는 두 형 장경택씨와 장경수씨에게 가마니를 공급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부산중앙시장 뒤의 청과시장 터에서 가마니 장사를 시작해 10년 가까이 이어가다가 31세가 되던 1929년 대궁양행을 설립했다. 장경호 창업회장은 일제의 쌀 수탈과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가마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1935년 부산 광복동에 남선물산을 설립했다. 남선물산은 수산물 전국 도매업과 미곡사업을 했고 큰 정미소도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상태 동국제강 명예회장이 동국제강 TQC경진대회를 참관하는 모습. <동국제강> 장경호 창업회장이 철강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광복 직후 일본에서 살던 한국인 기술자가 남선물산 창고를 임차해 신선기(철선이나 동선의 직경을 점차 감소시켜 원하는 규격으로 만드는 기계)를 설치하고 나사와 못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장경호 창업회장에게 신선기 1대를 사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장경호 창업회장은 신선기를 1대 인수하면서 철강업에 진출하고 조선선재라는 회사를 1949년 세웠다. 1년 뒤인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부산으로 피란민들이 몰려오면서 밤낮으로 못을 생산해도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상황이 됐다. 결국 조선선재는 급성장하는 계기를 맞았다. 6·25 전쟁이 휴전으로 일단락되고 장경호 창업회장이 본격적으로 철강업에 뛰어들 기회가 찾아왔다. 6·25 전쟁 통에 시설이 파괴된 한국특수강이 1954년 무렵 정상화할 경영자를 찾았던 것이다. 장경호 창업회장은 한국특수강을 인수하고 이를 토대로 자본금 1천만 환, 종업원 40명을 두고 동국제강을 설립했다. 장경호 창업회장은 16세 때 부산출신 추명순씨와 혼인해 슬하에 장상준, 장복임, 장상문, 장덕애, 장상태, 장상철, 장옥혜, 장종민씨를 두었다. 장경호 창업회장으로부터 동국제강을 물려받은 후계자는 셋째아들 장상태 명예회장이었다. 장상태 명예회장은 서울대학교 농대를 나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치고 잠깐의 공직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상태 명예회장은 그 뒤 1956년 동국제강 전무로 경영에 참여를 시작했다. 장상태 명예회장은 김숙자씨와 결혼해 슬하에 2남3녀로 장세주, 장영빈, 장문경, 장윤희, 장세욱을 두었다. 장경호 동국제강 창업회장 부부의 모습. <동국제강> 장상태 명예회장의 장남인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1953년 태어나 상명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남희정씨와 결혼했다. 장세주 회장의 아들로는 장선익 동국제강 전무와 장승익씨가 있다. 장승익씨는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둘째 딸 박정연씨와 2022년 결혼했다. 장상태 명예회장의 차남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은 1962년 태어나 육사 41기로 군에 몸을 담았다가 소령으로 예편한 뒤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장세욱 부회장은 원래 언론인을 꿈꿨으나 아버지 장상태 명예회장의 권유로 진로를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세욱 부회장은 김흥기 전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김남연씨와 혼인했다. 장세욱 부회장은 김남연씨와 사이에 아들 장훈익씨와 딸 장효진씨를 뒀다. 조장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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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안 대지주가 뿌리 효성그룹, 선대회장 조홍제 조석래 및 조현준 조현문 조현상 가족과 혼맥
- 2003년 9월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조현문(뒷줄 왼쪽 두번째) 전 효성 부사장 결혼식에서 가족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부인 송광자씨. 뒷줄 왼쪽부터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조현문 전 부사장, 조현문 전 부사장 부인 이여진씨, 이미경(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부인)씨,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그래픽 씨저널>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회장은 경상남도 함안 대지주였던 아버지 조용돈과 어머니 안부봉의 2남4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홍제 창업회장은 15세에 진주 출신 하정옥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조홍제 창업회장은 하정옥씨와 슬하에 3남2녀를 두었다. 장녀 조명숙씨는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남 진양의 대지주였던 허정호 전 서울신한병원장과 결혼했다. 차녀 조명률씨는 경남 산청의 대지주인 권동혁씨의 장남 권병규 전 효성건설 회장과 혼인했다. 조홍제 창업회장의 장남은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학교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학자의 꿈을 키웠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아버지 조홍제 창업회장의 1966년 효성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조석래 명예회장의 부인은 송인상 전 한국능률협회 명예회장의 셋째 딸인 송광자씨다. 조석래 명예회장은 송광자씨와 사이에 세 아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조현상 HS효성 대표이사 부회장 뒀다. 장남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모간스탠리에서 일하다가 1997년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효성그룹에 합류했다. 조현준 회장은 이희상 전 동아원그룹 회장의 막내딸 이미경씨와 결혼했다. 이미경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 전재만씨의 부인 이윤혜씨의 동생이다. 조석래 명예회장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사돈의 사돈'인 셈이다. 물론 사돈의 사돈은 법적으로 친인척관계는 아니다. 조석래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은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를 수석입학 및 수석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뉴욕주 변호사로 일하다가 1999년 경영기획2팀 부장으로 효성그룹에 합류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이부식 전 교통개발원장의 장녀인 이여진씨와 2003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여진씨는 2001년 미국 로펌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 조석래 명예회장 부부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조현문 전 부사장과는 2002년에 만나 1년 만에 결혼에 이르렀다. 이여진씨는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외무고시 31기로 합격해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등에 근무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특이한 이력이 있다. 가수 고 신해철씨와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해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라는 노래로 대상을 탄 것이다. 당시 조현문 전 부사장은 키보드를 쳤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가수 신해철씨와 보성고등학교 동창으로 1학년 때 반 대항 응원전을 하면서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효성그룹에서도 회사 행사에서 피아노를 치며 직원들을 독려했었다고 한다. 조석래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 조현상 HS효성 부회장은 경영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와 일본의 통신사 NTT도코모에서 일하다가 2000년 효성에 들어왔다. 조현상 부회장은 김여송 광주일보 사장의 딸 김유영씨와 혼인했다. 김여송 사장은 김용주 행남자기 회장의 사촌이다. 김유영씨는 줄리아드스쿨 음악대학원에서 비올라를 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2014년에는 세계적 첼리스트인 요요마와 함께 '실크로드 앙상블'을 협연했다. 조장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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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륭건설에서 시작된 DB그룹, 창업회장 김준기와 자녀 김남호 김주원 가족과 혼맥
- 2009년 5월10일 김준기(오른쪽에서 두번째) DB그룹 창업회장이 선친인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 3주기 추도식에서 가족친지들과 추모비를 제막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주웅 전 동부생명 사장(매형), 김흥기씨(동생), 김명자 여사(누나), 김남호 DB그룹 명예회장(아들) < DB그룹 > 씨저널] DB그룹의 시초는 1969년 설립된 미륭건설(동부건설의 전신)이다.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이 미륭건설을 업계에 알리게 된 계기는 연세대 이공대 건물공사였다. 독일 정부가 연세대학교에 100만 달러를 기부해 시작된 이 공사는 1970년대 무렵 국내 건축공사로는 규모가 가장 컸기에 유명 건설회사들이 수주를 하려고 아우성이었다. 당시 설립된 지 불과 2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던 미륭건설이 수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김준기 창업회장은 70여 차례나 연세대학교 관계자들을 찾아가서 하청을 주지 않고 직접 건설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우며 설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미륭건설이 이 공사를 따냈고, 일약 도급순위 30위권 안으로 도약하는데 성공했다. 오늘날 DB그룹 이름에 녹아 있는 '동부'라는 이름은 1971년부터 사용했다. 동부고속이 설립될 무렵이다. 동부는 도전과 개척을 의미하는 '동'에 안정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부'를 조합한 것이라고 한다. 1989년 미륭건설을 동부건설로 이름을 바꾸면서 본격적으로 그룹이름을 동부라고 쓰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뒤 2017년 동부에서 그룹 이름을 DB로 바꾸게 된다.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의 아버지는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이다. 김진만 전 부의장은 1954년 제3대 민의원 당선을 시작으로 7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한국 정치사의 거물로 꼽힌다. 국회 상공위원장과 공화당 원내총무를 맡은 바 있고 1973년 3월 재넉의원 215명 가운데 199명의 찬성을 받아 국회부의장이 됐다. 김진만 부의장은 부인 김숙자씨와 슬하에 김명자, 김준기, 김명희, 김택기, 김무기, 김흥기 등 5남3녀를 두었다. 김준기 창업회장의 배우자 김정희씨는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회장의 장남 김상준 전 삼양염업 회장의 2남3녀 가운데 둘째 딸이다.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회장은 고려대학교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씨의 동생이다. 김준기 창업회장은 김정희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두었다. 딸 김주원 DB그룹 부회장은 김효일 옛 해동화재 부회장의 장남 김주한씨와 결혼했다.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한 김주원 부회장은 일본 게이오대학교에서 유학 중이던 김주한씨와 1997년 약혼했다. 당시 동부그룹과 해동화재 오너가 사돈을 맺는다고 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김준기 창업회장의 아들인 김남호 DB그룹 명예회장은 2005년 6월 차경섭 전 차병원 이사장의 손녀이자 차광렬 차병원그로벌연구소장의 장녀인 차원영씨와 혼인했다. 누나 김주원 부회장이 두 사람의 인연을 맺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준기 창업회장의 누나인 김명자씨는 임주웅 전 동부생명 사장과 혼인했다. 임주웅 전 사장의 아버지는 국내 최초의 치약회사인 동아특산약화학을 이끌던 임형복 회장이다. 임주웅 전 사장의 형 임주용 전 중앙투금 부사장은 장상태 전 동국제강 회장의 막냇동생인 장복혜씨의 남편이다. 임주웅 전 사장은 김명자씨와 사이에 1남2녀를 뒀다. 이 가운데 아들 이준석씨의 장인은 윤종근 흥아해운 창업회장의 아들 윤호중씨다.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의 남동생 김무기 전 동부증권 부사장은 이종진 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장의 딸인 이지은씨와 혼인했다. 김준기 창업회장의 남동생 김홍기씨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동생 김희선씨의 소개로 교사인 오남선씨를 만나 연애 끝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준기 창업회장의 막내 여동생 김희선씨의 남편은 신춘호 전 농심 회장의 차남인 신동윤 율촌화학 회장이다. 김희선씨는 새언니인 오남선씨의 소개로 신동윤 회장을 만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준기 창업회장의 친인척 가운데 주목받았던 인물로는 2012년 별세한 외삼촌 김형배 전 동부문화재단 이사장이 있다. 김형배 전 이사장은 1932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그 뒤 상공부 상역국장, 공업진흥청장, 한국공업표준협회장, 한국소비자보호원장,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김형배 전 이사장은 1994년 DB그룹에 합류해 제조부문 회장과 상임고문을 맡았다. 김형배 전 이사장은 부인 김혜숙씨와 슬하에 아들 김한수씨, 딸 김이정씨와 김이원씨를 두었다. 조장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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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그룹 트럭 1대에서 시작된 여정, 창업회장 조중훈부터 조원태까지 가족과 혼맥
-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회장의 가족들. 왼쪽부터 4남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3남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회장, 장남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 <그래픽 씨저널>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회장은 1920년 아버지 조명희씨와 어머니 태천즙씨의 4남4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조명희씨는 종로에서 작지 않은 규모로 포목상을 했었는데 1930년대에 도산해 조중훈 창업회장 남매가 태어났을 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조중훈 창업회장은 1945년 고향인 인천에서 일제의 기업정비령에 따라 받은 돈과 저축한 돈을 합쳐 트럭 1대를 구입해 무역업과 수송업을 하는 한진상사를 세웠다. 이것이 한진그룹의 시초가 됐다. 조중훈 창업회장의 동생 조중건 전 한진 부회장은 자서전 '창공에 꿈을 싣고'에서 '한진은 한자로 '한민족의 전진'을 의미한다'고 그 뜻을 적었다. 한진그룹은 1956년 7만 달러 규모의 미군부대 화물운송 계약을 맺으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당시는 한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100달러도 안되던 시기였다. 한진그룹은 1966년부터 5년 간 베트남에서 미군 군수품 수송을 맡아 1억5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재벌 반열에 올랐다. 한진그룹이 주력사업인 항공업에 진출한 것은 한진상사 창립 23주년인 1968년 11월1일 조중훈 창업회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유를 받아 만년 적자 공기업이었던 대한항공공사(대한항공의 전신) 인수의사를 정부에 전하게 되면서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당시 27억 원의 부채에 프로펠러기 7대, 제트기 1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진그룹 임원들은 극렬하게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중훈 창업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해외 나들이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하자 인수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중훈 창업회장은 1944년 집안 어른의 중매로 김정일씨와 결혼해 슬하에 조현숙, 조양호, 조남호, 조수호, 조정호씨 등 4남1녀를 두었다. 조중훈 창업회장의 장녀 조현숙씨는 1968년 숙부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중매로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있던 이태희씨와 혼인했다.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은 1973년 이재철 전 교통부 차관의 장녀로 서울대학교 미대를 졸업한 이명희씨와 혼인했다. 조양호 전 회장과 이명희씨는 자녀로 조현아(개명후 조승연)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민 한진 사장을 두었다. 조원태 회장은 2006년 김태호 충북대학교 정보통계학과 교수의 딸 김미연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조중훈 창업회장의 아들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은 김원규 전 교육감의 차녀 김영혜씨와 테니스코트에서 만난 인연으로 백년가약을 맺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조원국씨와 조민희씨 1남1녀가 있다.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의 부인은 최은영씨다. 최은영씨의 아버지는 최현열 NK그룹 회장, 어머니는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회장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씨다. 조중훈 창업회장의 막내 아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1987년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둘째 딸 구명진씨와 혼인했다. 조중훈 창업회장의 형인 조중열 한일개발 부회장은 2남1녀를 두었다. 이 가운데 장남 조지호 한양대학교 교수는 박정희 정권에서 21대 상공부장관을 지낸 이병호씨의 장녀 이숙희씨와 혼인했다. 조중훈 창업회장의 첫째 여동생 조정옥씨는 전윤진 전 동양화재 감사와 결혼했다. 조중훈 창업회장의 둘째 여동생 조정원씨는 사업가 박두진씨와, 셋째 여동생 조도원씨는 박태원 전 인하대학교 총장과 혼인했다. 조도원씨는 박태원 전 총장과 슬하에 박동훈 전 르노삼성자동차 사장, 박동화 인하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 박동현 인하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등 아들 셋을 두었다. 조중훈 창업회장의 막내 여동생 조경숙씨는 미국 의사 박소회씨와 결혼했다. 조중훈 창업회장의 남동생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이상실 전 상공은행장의 셋째 딸 이영학씨와 결혼해 1남3녀를 낳았다. 조중건 전 부회장의 장남 조진호 한양대학교 교수는 이종남 전 감사원장의 큰 딸 이경아씨와 혼인했다. 조중건 전 부회장과 이종남 전 감사원장은 오랜 친구로 알려져 있다. 조중건 전 부회장의 장녀 조윤정은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장남 이정훈씨와 결혼했고, 막내 딸 조주연씨는 이명박 정권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대외전략기획관을 지낸 김태효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결혼했다. 조장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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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L그룹 창업주 이재준부터 오너 3세 이해욱까지, 명예회장 이준용의 가족과 혼맥
- 앞줄왼쪽 부터 이준용 DL그룹 명예회장, 장녀 이진숙씨,막내딸 이윤영씨, 한경진 전 대림미술관 이사장. 뒷줄 왼쪽부터 차남 이해승씨, 둘째 며느리 김경애씨, 삼남 이해창 켐택 대표이사, 셋째 며느리였던 최영윤(이혼)씨, 장남 이해욱 DL그룹 회장, 첫째 며느리 김선혜씨. 앞줄 아이들은 이 명예회장의 손주들. <그래픽 씨저널> 대림그룹을 세운 수암 이재준 창업회장은 1917년 7월27일 경기도 시흥군 남면 산본리에서 아버지 이규옹씨와 어머니 양남옥씨의 5남4녀 중 넷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규옹씨는 한 해 벼 500여 섬을 수확하는 자작농 겸 지주였다. 이재준 창업회장은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며 유복한 가정의 형제들 사이에서 자랐다. 이재준 창업회장은 아버지 이규옹씨의 가르침에 따라 약속을 지키는 것과 검약한 생활을 중요하게 여겼다. 20년 간 누런 잠바 하나로 골프와 등산을 했고 화장실 변기 물통에는 벽돌을 넣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재준 창업회장은 1939년 인천 부평역 앞에서 부림상회라는 작은 목재소를 점차 키워 오늘날의 DL그룹이라는 건설전문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재준 창업회장은 19세에 경기도 수원지역 대지주의 딸인 이경숙씨와 결혼했지만 맏아들 이준용 DL그룹 명예회장이 4세 때 이경숙씨는 세상을 등졌다. 그 뒤 이재준 창업회장은 재혼한 박영복씨와 사이에 차남인 이부용 전 대림산업 부회장을 낳았다. 이부용 전 대림산업 부회장은 이종수 전 서울주철 회장의 딸인 이선희씨와 혼인했다. 이재준 창업회장의 첫째 아들인 이준용 DL그룹 명예회장은 한경진 전 대림미술관 이사장과 사이에 딸 이진숙씨, 아들 이해욱 DL그룹 회장, 아들 이해승씨. 아들 이해창 컴텍 대표이사, 딸 이윤영씨를 두었다. 이해욱 DL그룹 회장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외손녀인 김선혜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해욱 회장은 김선혜씨와 사이에 딸 이지원씨, 아들 이동훈씨, 둘째딸 이지희씨를 뒀다. DL그룹은 이밖에도 LG그룹과 혼맥이 이어져 있다. 이재준 창업회장의 막냇동생인 이재연 아시안스타 회장이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의 둘째 딸 구자혜씨와 결혼해 맺어진 인연이다. 이재연 회장은 LG그룹과 혼맥으로 LG카드 부회장과 LG그룹 고문을 지냈다. 이재연 회장은 국내에 패밀리 레스토랑 'TGI 프라이데이'를 처음 들여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준용 DL그룹 명예회장의 아들 이해승씨는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김현영 미주리대학교 교수의 딸인 김경애씨와 혼인했다. 이해창 켐텍 대표이사는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의 딸 최영윤씨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이해창 대표의 자녀 중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로는 유튜브 '쥴스 다이어리'를 운영하는 이주영씨가 있다. 이주영씨는 2000년생으로 이해창 대표의 첫째 딸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2019년 CEO스코어에서 조사한 미성년자 주식보유현황에서 4위를 기록했다. 이주영씨는 조사 당시 켐텍 주식을 28.5% 보유하고 있었는데 당시 평가액은 42억 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