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송이 엔씨문화재단 이사장이 2024년 1월1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서울 이노베이션 포럼 2024'에서 윤송이 엔씨소프트 사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서울시>
[씨저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의 배우자인 윤송이 엔씨문화재단 이사장은 한때 엔씨소프트의 최고전략책임자(CSO), 엔씨웨스트 최고경영자(CEO) 등으로 활약하며 엔씨소프트 ‘가족경영’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윤 이사장은 엔씨소프트를 떠난 이후 엔씨소프트의 경영자 윤송이로서가 아니라, AI(인공지능) 전문가이자 AI ‘사상가’로서 글로벌 테크 리더들과 어깨를 AI의 방향성과 책임을 고민하는 인물로 변모했다.
엔씨소프트가 여전히 게임회사로서는 이례적으로 AI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윤송이 이사장이 엔씨소프트의 경영 전면에 복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직·간접적으로 엔씨소프트의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 ‘경영자’에서 ‘사상가’로, AI를 다른 측면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윤송이
윤송이 이사장은 엔씨소프트에서 ‘AI’라는 화두를 처음 꺼내든 인물이다.
윤 이사장은 서울과학고등학교 조기·수석 졸업,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수석 졸업,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대학원 미디어랩에서 한국인 최연소로 박사학위 취득 등을 통해 학창시절부터 ‘천재’라고 불렸다.
20세기의 마지막을 풍미했던 인기 드라마 ‘카이스트’ 속 천재소녀 캐릭터, ‘이해성’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윤 이사장은 2012년 엔씨소프트에 들어온 뒤 이재준 AI센터 상무를 직접 영입하면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었다. 이후 이 태스크포스는 AI랩으로 전환됐고, 2016년에는 ‘AI센터’로 확대개편됐다.
윤 이사장이 ‘엔씨소프트 AI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유다.
엔씨소프트의 경영자로서 인공지능의 미래를 찾았던 윤송이 이사장은, 현재 AI 기술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논의하는 글로벌 무대에 ‘주연급’으로 참여하고 있다.
윤 이사장은 에릭 슈미트 전 구글 회장,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더스틴 모스코비츠 등 쟁쟁한 AI 전문가들과 함께 스탠퍼드대 인간 중심 AI 연구소(HAI)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 이사, 글로벌 PC 기업 HP의 이사 등도 윤송이 이사장의 이름 앞에 붙는 직함들이다. AI분야의 ‘글로벌 리더’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위치다.
윤 이사장은 엔씨소프트를 떠난 이후 ‘게임을 위한 AI’를 넘어 AI가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인류는 기술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탐색하고 있다.
윤 이사장은 최근 조선비즈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AI시대가 찾아오면) 기술 독점과 권력의 집중으로 불평등 문제가 심해질 수 있다”며 “인간의 비인간화 문제처럼, AI 기술의 발달로 사람이 기계의 부품처럼 다뤄지면서 인간다움을 상실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윤송이가 떠난 엔씨소프트의 AI, 변화를 모색하는 중
윤송이 이사장의 이탈 이후에도 엔씨소프트는 AI 기술을 그룹의 핵심 전략으로 삼아왔다. 자회사 ‘엔씨에이아이(NCAI)’를 설립해 게임 내 보이스 합성, 자연어 처리, 행동 인식 등 다양한 기술을 게임에 접목하고자 노력해 왔다.
AI 연구 인력은 수백 명에 달하고, 엔씨소프트는 자신들이 “기술 기반 게임 회사”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게임과 AI의 접목이 커다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엔씨소프트의 게임 가운데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만들어진 게임은 콘텐츠는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거기에 2023년부터 이어진 신작들의 부진과 수익성 악화 탓에 엔씨소프트의 AI 투자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나오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AI 전략이 기술적 우위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보니 오히려 ‘쓸모없는 투자’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엔씨소프트는 최근 인공지능의 방향을 ‘게임’이 아니라 패션, TTS(목소리 생성 서비스), CS(소비자서비스) 챗봇 등 여러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임수진 엔씨에이아이 최고사업책임자(CBO)는 최근 바이라인네트워크가 주최한 ‘AI 에이전트와 지능형 인터페이스 시대’ 콘퍼런스에 참가해 “게임회사인데 어쩌다보니 패션에 정통해졌다”라며 “현재 5개 회사와 함께 패션 관련 인공지능의 실증실험(PoC)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송이 NC문화재단 이사장(오른쪽)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2022년 10월20일 서울 종로구 엔씨문화재단에서 열린 창립 10주년 기념 콘퍼런스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윤송이의 엔씨 복귀, 하지만 ‘연결’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쪽에서는 엔씨소프트의 AI 구상이 확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윤송이 이사장 같은 글로벌 AI 권위자의 복귀가 엔씨소프트의 기술과 이미지 모두를 개선할 수 있는 카드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윤 이사장의 복귀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아보인다. 윤송이 이사장이 엔씨소프트를 떠난 것은 ‘가족경영’이라는 엔씨소프트의 구조 자체에 대한 선긋기의 의미였기 때문이다.
김택진 대표의 친동생인 김택헌 전 엔씨소프트 수석부사장이 윤 이사장과 함께 물러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글로벌 무대에서 자신의 역량을 온전히 발휘하고 있는 윤 이사장이 엔씨소프트 경영 복귀를 원할 가능성 역시 낮다.
하지만 엔씨소프트와 윤 이사장의 ‘연결’ 가능성이 완전히 닫혀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 자문, 인공지능 관련 투자 자문, 혹은 엔씨문화재단을 통한 간접적인 연계 등 다양한 형태로 엔씨소프트가 윤 이사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열려있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윤송이 이사장이 엔씨소프트로 복귀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라며 “다만 현재 엔씨소프트 AI 기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초거대언어모델(LLM) ‘바르코’가 윤 이사장의 손에서 탄생한 만큼 엔씨소프트의 AI 개발 자체가 여전히 윤 이사장의 그늘 아래 있다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